산과 산이 이어지는 낮은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 부락을 이루고 마을을 형성하며 살던 시대가 있었다.
농사가 주업이던 그 시절,
서로의 바쁜 일손을 나누고 돕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품앗이’이다.
얼마나 신선하고 아름다운 풍속인가?
초상집이 생기면 동네 전체가 며칠씩 함께 슬퍼하며
상주들 옷이며 음식이며 산소를 만들어
고인을 모시기까지 슬픔의 ‘품앗이’로 이루어졌다.
물론 잔치가 벌어져도 온 동네가 기뻐하며 품앗이로
떡도 음식도 서로 담당하여 큰일을 치른다.
한마디로 내 슬픔은 곧 동네 전체의 슬픔이고
우리 집의 잔칫날은 온 동네의 기쁜 잔칫날이었다.
이런 날들은 아예 농사일을 접어두는 불문율은 품앗이의 법도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그런 ‘품앗이’가 변질되고 오염되어 ‘스펙품앗이’라는 신종어로 둔갑하였다.
소위 아빠찬스, 엄마찬스를 쓰며 벌어지는 돈 많고 빽좋은 집안끼리의 신종품앗이다.
떳떳하지 못한 품앗이니 쥐도 새도 모르게 무언으로 어둠속에서 이루어진다.
없는 스펙을 만들어 상급학교 서류용으로 찍어내는 어둠의 장난이니
주고받는 기쁨이나 보람은 꿈에도 없다.
이미 품앗이의 원색이 탈색되었으니 품앗이로 오가는 정도 사랑도 실종되고,
자식도 부모도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산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스펙품앗이’로 원치 않게 희생타가 된 이들의 한 서린 한숨들로 인해
저들의 성공이 부서지기도 하고,
성공의 고지로 올라가다 주저앉기도 한다.
결국 가짜품앗이는 허물어지고 말 모래위의 집이다.
굳이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왜 그 짓을 하는가?
결국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야만 했는가?
가짜스펙으로 얻은 성공이 무슨 좋은 탑을 쌓는단 말인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으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본래의 품앗이로 되돌아가야 한다.
서로 나누고 서로 돕는 품앗이로 되돌려져야 한다.
어려움을 나누고 격려하는 품앗이의 풍습을 살려내야 한다.
그래서 기쁨은 배로 되고
슬픔은 반으로 줄어드는
품앗이의 혜택을 서로 받고 서로 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좋은 풍습을 후대에 유산으로 길이 남겨줘야 한다.
Comentá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