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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성목사의 사람사는 이야기>나의 모나리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초상화, ‘모나리자’는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그림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품이다. 그래도 작가는 하나님과 인류 앞에 완숙하지 못한 그림이라는 고백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사실 자세히 보면 ‘모나리자’는 좀 어수룩하고 모자란다. 눈빛은 흐리멍덩하고 입술가장자리는 치켜 올라갔다. 전문가들은 그녀의 눈썹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다. 정말 못생겼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모나리자가 왠지 친숙하게 여겨진다. 내 자신이 어수룩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선지 나는 항상 대강 해놓은 것이 잘된 것이라는 지론을 펴왔다. 완벽함에 못 미쳐도 별로 문제라고 생각지도 않고, 남들과 겨뤄서 굳이 이겨야함의 필요성도 평생 못 느끼고 살았다. 약삭빠르게 남들 위에 올라가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언제나 추호도 없다.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모나리자’다.

남의 말을 잘 들어서 사기도 잘 당한다. 교도소에서 나온 교회 제자가 목사님께 은혜를 갚는 의미로 미제물건을 원가도 안 되게 싸게 드리겠다며 선불을 요구했다. 신혼초의 내 아내는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라며 말렸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제자를 믿었고 거액의 돈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사기였다.

신학교동창 목사가 우리교인을 심방하며 교인을 뺏어간다는 소문을 듣던 중, 마침 우연히 우리 교인 어느 권사님 댁에서 그 친구와 마주친 적이 있다. 브라질선교사시절 한인목회를 할 때의 일이었다. 나중에 미국에 살면서 교단교역자 모임에서 그 친구를 만났을 때 그는 멋쩍어 쩔쩔매며 억지웃음으로 껄껄거렸다. 늘그막에 처량 맞게 보였다.

미국에서 은퇴 후, 성결대학 강사로 한국에서 몇 년 지내는데 가난한 강사인 우리의 13평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노리고 유명영어학원원장인 독립투사 후손이라는 모목사가 접근해왔다. 아내는 그를 목사가 아니고 비즈니스의 달인이라며 경계인물이라고 했다. 정말 그는 비즈니스맨들을 이용하는 사기꾼이었다. 나중에 청소년들 4명을 성폭행한 죄목으로 연행되었다는 뉴스를 본 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참으로 추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다 돌아가신 선교사의 이름을 도용하여 LA에서 둥지를 틀고 살던 가짜목사는 틈만 나면 신학교설립을 하자며 나를 졸라댔다. 그에게서 목사 냄새가 전연 안 난다던 아내의 말은 적중했다. 나중에 보니 한미경찰공조범죄조약에 따라 최초로 붙잡힌 수배중인 강도였다. 그는 빡빡 머리에 수갑을 찬 채 경찰에 끌려 한국으로 이송되는 탑뉴스를 장식하며 LA공항을 빠져나갔다.

정말 꼭 그렇게들 살아야 했을까?

보이스피싱, 인터넷사기, 이메일사기… 일일이 열거하기도 부끄럽지만 나는 당할 때마다 “속이는 사람이 잘못이지 내가 뭘 잘못했냐”고 아내나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쳤지만 정말 어이없는 일이고 생각해보면 정말 ‘나는 참 못난 모나리자’다.

그런데 어쩌랴. 이제 젊음은 그치고, 결산의 때가 왔는데….

누군들 모나리자의 모자란 듯한 허술함이 좋겠는가. 단지 만족하지 못한 작품을 “부족합니다”라고 고백하고 떠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실함이 귀하다면 나도 다빈치처럼 만족스럽게 못해드린 작품들이지만 그나마라도 하나님께 바치고 싶은 것이다. ‘모나리자’처럼 충분하지 못하지만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의 ‘모나리자’를 하나님께 두 손으로 올려드리고 싶은 것이다.

<선교지에서 흘린 땀과 눈물의 모나리자!> <목회지에서 영혼구원을 위한 목양의 모나리자!> <선지동산에서 혼신을 다한 양육의 모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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