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코의 ‘아무노래’를 듣고 있으면 신이 난다. ㅡ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뭐가 문제야ㅡ 노랫말 첫 소절부터 속이 시원해진다. 목청 돋우어 따라해 보지만 내가 부르면 ‘아무렇게 부르는 노래’가 되어버린다.
요즘은 노래 관련 프로그램이 뭐 그리 많은지 노래 못하면 큰일 나는 세상 같다. 노래들도 어쩜 그리 잘 부르는지 음치인 나는 기가 죽는다. 그래도 다행히 듣는 재주가 좀 있는지 처음 듣는 노래도 부르는 사람이 누군지 맞춰 보라면 제법 잘 맞춘다.
수업하다가 가끔 아이들에게 자기가 쓴 글을 읽게 할 때 장난삼아 “래퍼처럼 읽어줘”라 주문하면 진짜 해주는 녀석이 있다. 리듬 타기도 어려운데 아이들은 제법 한다. 듣고 있으면 신난다. 음정이 벗어나고 리듬이 틀려도 나름대로 신나게 부른다. 틀리면 좀 어때!
일본의 방송작가 겸 작사가 아키모토 야스시는 <10대여, 마음 가는대로 해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악보대로 노래를 잘 불러야만 한다고 오해를 하는 경향이 있어. 물론 음정이나 리듬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진정한 노래는 가슴에서 우러나온다고 생각해. 일류대 성악과를 다닌 어떤 사람이 악보대로 노래를 한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음악이라고 할 수 없어. 감동이 없잖아! 악보에 쓰여 있지 않은 그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지.”
그는 모창은 절대 질색이라 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감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중요하단다. 스스로 노래를 못 부른다는 선입관을 갖지 말란다. 그러니깐 틀려도 괜찮아!
대학 때 친구를 따라 친구의 외할머니 댁으로 여행을 갔었다. 대천해수욕장이 가까웠던 시골이다. 친구 할머니께서는 모처럼 너희들이 왔으니 구경삼아 평소 일삼아 다니시는 절에 함께 가보자 하셔서 우리는 산행도 할 겸 따라나섰다. 크리스천인 나는 은근 비구니들만 있는 절에 대한 호기심의 발동도 일었다.
도착해보니 마침 일곱 살쯤 된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버려진 아이를 절에 데려와 키운다고 했다. 그 아이는 우리를 보더니 무척 반긴다. 친구의 손톱에 칠해진 매니큐어를 보더니 신기해하며 묻는다.
“언니야, 손톱 이쁘다. 어떻게 한 거야?” 장난기가 발동한 친구가 엉뚱한 소리를 한다.
“이거 예쁜 꽃잎을 따다가 손톱에 계속 문지르면 돼.” “나도 해봐야지.” 아이고 순진도 해라.
이 순진한 아이가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 주겠단다. 그리고 시작하여 ‘고향의 봄’을 부르는데 음정이 하나도 안 맞는다. 타령처럼 부르니 딱 ‘고향의 봄타령’이다. 너무 웃겼지만 잘 참고 신나게 박수를 쳐주었다. “와, 잘한다. 누가 가르쳐 주었어?” “노 할머니 스님”
그랬구나~ 그래~~ 음정이 좀 틀리면 어때! 백 명이 노래를 부른다면 백 가지 색깔의 서로 다른 노래가 있어야 재미나지. 아무 노래나 내 맘대로 아무렇게나 불러도 되지. 틀려도 괜찮아! 괜찮고말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