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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초록이야기> 가슴속에 있는 사람

Updated: May 10, 2022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돌아가신 엄마의 이야기다. 거짓말이었으면 좋으련만 사실이었다. 햇살이 대청마루에 길게 내려앉은 봄날 오후, 햇살은 떠날 자와 남은 자를 갈라놓았다. 안방의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건넌방의 어린 나는 세상에 남았다. 아기 우는 소리가 너무 길게 나서 아랫방에 세 들어 사시는 준행이네 아줌마가 아기를 달래려 안방으로 들어가셨다가 꼬깃꼬깃 구겨진 신문을 손에 잡고 숨져있는 엄마를 발견하셨다했다. 엄마는 막내아들을 해산한 기쁨에 젖어 아기를 끼고 누워 신문을 보며 마냥 행복하셨나보다.

분주히 대문을 들어섰던 의사들은 황망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저으며 심장마비라는 진단을 내리고 들어섰던 대문으로 떠났고 집안은 삽시간에 눈물로 가득했다. 소식을 듣고 벌벌 떨며 달려오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애통은 차라리 비명이었다. 곧 숨이 멈출 듯한 할머니의 통곡은 길게 이어졌다. 명줄 짧게 이 세상에 왔다가 떠난 며느리가 불쌍해서였을까. 엄마라는 끈이 떨어진 어리디 어린 손주들이 불쌍해서였을까. 하늘같은 외아들이 홀아비가 됐다는 사실이 할머니의 가슴을 무너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삼일장이 치러졌다. 장지에는 초등학교 4학년 큰아들과 초등학교 2학년 둘째아들만 따라가고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는 집에 남겨졌다. 베로 만든 긴 상제복을 입은 어린 아들 둘이 도마뱀을 잡는다고 선산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바람에 어른들이 피눈물을 흘렸노라고 고모가 집에 돌아와서 알려주셨다.

사실 엄마를 잃은 슬픔이 무언지 알기에는 정말로 우리 남매들은 너무나 어렸다. 엄마가 죽던 날 엄마 옆에서 길게 울던 갓난아기 내 막내동생은 태어난 지 불과 한 달이었다. 엄마는 어쩌자고 그렇게 엄청난 일을 벌려놓고 우리를 떠나갈 수가 있었을까.

멍한 상태가 안 풀렸지만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교실이 있는 건물 1층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데 남자녀석 하나가 떠들었다. “쟤네 엄마 죽었대.” 내 얼굴이 빨개졌다. 죄지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엄마가 죽은 게 내 잘못도 아닌데 부끄러웠다. 날마다 기가 죽어 학교에 갔고 기가 죽어 집에 왔다. 엄마가 죽은 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내 운명은 맞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남들 다 있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서럽고 불편한 일이라는 걸 말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깊이 패는 상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나도 살아가면서 알았다. 상처는 내게 달라붙어 의무감을 강요했다. 그리고 끝없이 상처를 만들어냈다. 상처가 아물 즈음 딱지가 생기면 그 딱지를 뜯어내는 아픔이 또 상처를 만들었다.

‘딩동-’ ‘당신에게 상처가 전달되었습니다. 반품은 없습니다. 당신이 상처를 잘 관리할거라 믿어요.’

엄마가 죽은 게 내 잘못은 아닌데 커가면서 또 어른이 되어서도 난 의무감을 느끼고 관리해야 했다. 엄마도 그걸 바라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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