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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 Focus> 구명조끼의 힘!!




새해가 밝았는데도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새희망이 솟구치질 않는다. 느닷없는 새떼들의 출몰, 화염에 휩싸인 비행기, 아까운 189명 생명들. 대한민국은 혼절지경이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탄핵’이란 단어를 몇 년간 옛날얘기 듣듯 수없이 공해수준으로 들어온 우리에게 ‘계엄령’이라니. 악몽이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근본적으로 모든 것에 올바른 원칙이 살아있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병력 904명을 태운 수송선 ‘도체스터호’가 독일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를 맞고 침몰하기 시작할 때, 4명의 군목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를 믿는가?” “아니요” “부디 이 구명조끼를 입고 살아서 꼭 예수를 믿어 천국에서 만나자” 4명의 군목은 기울어진 갑판에서 병사들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었다.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은 우리 군목님들의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의 머리 위로 한빛 광채가 서렸고 잠시 후 그들은 평온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았습니다” 살아남은 클락 병사의 최후 진술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강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다.

 

후에 트루먼 대통령은 그들을 기리는 예배당을 건립하였고, 필라델피아시에서는 희생적인 군목들을 위한 채플린스 기념관을 지었고, 작곡가 제임스 스웨어린젠은 뮤지컬 ‘영원한 빛(The Light Eternal)’을 제작하여 그들의 값진 희생을 기렸다.

문학도 ‘구명조끼’가 있다. 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강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글이 구명조끼로서 사람의 정신력을 구출을 한다는 뜻이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작가의 삼촌이 조카의 노벨문학상 소식에 “내내 울었다”는 편지글을 보았다.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문학인의 친동생이며 현직 목사인 그는 왜 울었을까?

형님네 집안이 하나님의 구원에서 더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조카의 작품에 대한 평가로 한국사회가 두 쪽으로 갈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예감 때문이라 했다. 사실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작품의 평가는 이미 양 갈래로 철저히 나뉘어져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건을 한쪽의 관점만으로 평하는 듯한 시각을 작품에서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 “이념이나 지역 갈등을 부추겨 정치이익을 얻으려는 정치인의 세몰이에 영합하는 듯한 작품을 쓰지 말고 공평한 자세로 써야 한다”는 것, “과거의 상처를 헤집지 말고 양쪽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 모두모두 공감이다.

대한민국이 정의롭지 못하여 살만한 나라가 아닌 것처럼 쓰는 작품은 안 된다. 패륜적인 것이 정당화되면 근친상간, 수간, 인육 먹는 행위로 미화될 수 있으니 형부와 처제의 작품구성의 지적도 공감이다. 그래서 학교에 그 책이 들어오는 것을 이미 학부형들은 막고 있었던 것이다. “조카의 마음을 아프게 찌를 것이 가슴 아파 울었다”는 삼촌의 편지에 공감하는 우리 편집진들도 노벨문학상 희소식에도 불구하고 ‘맑음’이 아니다. 새해엔 제발 나라도, 민족도, 사상도 ‘구명조끼’의 정신으로 모두 거듭났으면 좋겠다. <원더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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